목사님, 오늘 목사님의 묘지를 다녀왔습니다. 목사님에 대한 사랑이 식지않은 듯 하늘은 푸르렀고 아직도
시들지 않은 꽃들이 목사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일전 하관을 집례하는 목사님이 “ 목사님의
시체를 여기 장사 지내오니 흙으로 지음 받은 육체는 흙으로…” 하고 마지 막 선고가 끝나자, 아드님 박길재
목사의 선창으로 목사님의 관이 영원한 안식처인 바닥으로 내려가는 3-4분 동안 일제히 떠나갈듯 환호했던
그 박수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 하고 목사님의 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게 될것을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육체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면서 [시신을 여기에 장사한다/ 묻는다] 하지않고 [심는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3-44)
목사님의 시신은 이곳에 묻혀 장사 지냈지만 영적으로는 심으신 것입니다. 묻힌것을 언젠가 썩어서
없어지겠지만 심은 것은 강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 영원한 진리를 맛보게 될것입니다. 목사님은
많은 것을 우리들에게 심겨 주셨고 복음의 씨를 뿌리시고 떠나셨습니다.
목사님은 이민목회의 바른 목회자의 상을 심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미국에 오시자마자 1977년부터
20여년을 척박한 땅(브롱스)에 베델교회(만하탄 북부교회)를 세우셨고 한인이 별로 살지 않은 그곳에서
500명이 넘는 한인 이민교회로 성장시키기까지 누구보다도 오직 한길로, 한인 이민교회를 사랑하셨고
눈물로 기도로 온몸으로 이민교회의 옳바른 목회자의 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2003년 베델교회를 은퇴하시고 2004년 11월 저희교회로 오신 이후 몸이 아프시기전까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새벽기도회를 빠지신적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목사님과 사모님을 호칭할 때
[진짜 목사님, 진짜 사모님]하고 불렀습니다. 목사님 과 사모님은 이민교회의 진짜 목회자요 진짜 사모님의
그리고 부족한 저에게 이민목회에 대하여 기회있을 때마다 조언해 주셨는데, 이목사, 하루에 기도 얼마나
하나? (목회자의 영성생활에 대하여), 교인들 심방은 자주 다니나? (교인들 돌봄 목회에 대하여), 목사가
교회를 강하게 끌고 가야해! (목회자의 리더쉽에 대하여), 교회 부흥에 찬양은 꼭 필요해, 재정이 들더라도
찬양리더를 세워야 해! (예배와 찬양에 대하여)… 아직도 목사님의 쉰듯하면서 단호한 목소리가 귀가에
목사님은 1980년부터 뉴욕 뉴저지 연합감리교회 몇분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웨슬리 부흥전도단]을
설립하시고 이민교회 목회자들의 영성훈련을 이끄셨고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능한 목회자를 강사로
세워 한인 연합감리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초석을 다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은퇴후에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 선교회]를 세우시고 유럽지역의 열악한 한인 목회자들을 돕는데 앞장 서셨습니다.
목사님은 이민목회를 위한 온전한 희생의 본을 심어주셨습니다. 저희교회가 2005년도에 교회건축을 결의
했을 때에 원로 목사님이시면서도 앞장서 건축을 이끌어 주셨는데 본인 타고 다니시던 큰차를 팔아서 건축
헌금으로 바치셨습니다. 목사님의 세분 자녀들이 다 힘들게 목회하고 있었는데도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으시고 희생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베델교회가 그 지역에서 가장 성장한 교회였는데도 교단에서 하는 본인을 위한 펜션(Pension)
이나 의로보험을 거부하셨다는 것은 지금도 목회자들 사이에 전무후무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삶속에는 오직교회, 오직 기도, 오직 복음전도 밖에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끝까지 목회자의 고난의 본을 심어 주셨습니다. 내가 알기로 목사님이 베델교회를 건축하실 때에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뇌수술을 하셨고 2010년 심장으로 연결된 혈관 수술을 받으신 후에 돌아 가시기 까지
많은 육체적인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그동안의 사모님의 아름다운 헌신은 이제는 누구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인 연합감리교회의 자랑스럽고 위대한 [사모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많은 목사님들이
이구동성 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민목회를 위하여 평생 헌신하신 목사님이 마지막까지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하나, 하고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모진 목회자의 아품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들이셨고
끝까지 그 고통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평생 개인의 안락함이나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으셨고 본인이 지신 목회자의 아품을 남에게 회피하거나 전가하지 않고 가슴에 품고
오히려 그 고난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고난속에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고난을 견디어내고 그
고난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이 목회자의 길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목사님은 마지막까지 많은 사람을 심어놓고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세분의 자녀들이 뉴저지 연회에서
Elder목회자로, 한분은 평신도 지도자로 섬길 뿐아니라, 베델교회를 통하여 목사님의 사역훈련을 거쳐간
후학들이 아마도 뉴욕 뉴저지만이 아니라 한국교계에서도 목회자로 신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그 사역의
생명들이 민들레의 씨앗처럼 뿌려져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목사님의 마지막 가시는 날 뉴저지연회 한인 코코스의 약 40여명의 목회자들이 까운을 입고 특송을 하였고,
뉴욕 뉴저지의 500여명의 후배 목회자들이 목사님의 운구행렬을 뒤따랐습니다. 우리 보다 앞서가신
이민목회의 아버지 목사님! 이민목회의 영원한 모델이 되신 목사님! 천국에서도 주님께서 영광의 박수로
목사님의 영혼을 받으신줄 믿습니다.
어디선가 하늘에서 찬양이 들려 오는 듯합니다.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겸손이, 당신의 그 순종이, 당신의 그 충성이, 그 사랑이..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불타는 사명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같이
주안에서 편히 잠드소서! 그리고 주안에서 영광의 부활로 다시 만날 때까지…
*티넥(오메가)한인 연합감리교회 이재덕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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